요즘 내가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는 건, 소위 ‘컬쳐리스트’라는 존재의 변화다. 예전엔 그냥 콘텐츠 수집가 정도로 여겨졌는데, 요즘은 완전히 다른 의미로 진화하고 있다. 나도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흐름에 발을 담그게 됐다. 특히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큐레이션 경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신이 모은 정보나 취향을 브랜드화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지더라. 실제로 구글 트렌드 분석을 보면 ‘컬쳐리스트’ 검색량이 2020년 이후 3배 이상 증가했으며, 인스타그램에서 #컬쳐리스트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은 50만 개를 넘어섰다. 이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직업군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컬쳐리스트라는 말 자체가 생소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문화 전반에 대한 안목과 큐레이션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영화, 음악, 책, 전시,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필터로 가치 있는 것들을 골라내고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예전에는 평론가나 전문가의 영역이었지만, 지금은 인스타그램 한 줄과 블로그 글로도 충분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한국일보의 관련 기사에서도 ‘개인의 취향이 직업이 되는 시대’라고 표현했는데, 정말 공감가는 말이다. 특히 팬데믹 이후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온라인 큐레이션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문화 소비 패턴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개인의 추천이 오히려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내가 처음 컬쳐리스트라는 개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우연히 알게 된 한 지인의 사례 덕분이었다.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주말마다 독립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는 취미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의 블로그가 유명해지면서 영화제에서 초청을 받고, 심지어 출판사에서 영화 에세이를 제안받더라.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진짜 자기만의 목소리로 무언가를 꾸준히 정리하는 게 이렇게 큰 힘이 될 수 있구나’라는 걸 실감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취미의 힘’을 증명하는 사례다. 그는 처음부터 유명해지려고 한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솔직하게 기록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가 추천하는 영화는 일종의 ‘신뢰 마크’처럼 여겨지게 됐다. 이처럼 컬쳐리스트의 핵심은 ‘진정성’에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취향의 필터’를 거친다는 점이다. 요즘 같은 정보 홍수 시대에 중요한 건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잘 걸러진 정보다. 위키백과의 ‘큐레이션’ 항목에서도 큐레이션의 핵심은 ‘선별과 맥락 부여’라고 설명한다. 즉, 그냥 ‘이 영화 봤어요’가 아니라 ‘왜 이 영화가 지금 봐야 할 가치가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켰을 때, 단순히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을 넘어 ‘한국 사회의 계층 문제를 자본주의적 생존 게임으로 풀어낸 점’이나 ‘각 캐릭터가 상징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분석하는 사람들이 주목받았다. 이런 깊이 있는 해석이 바로 컬쳐리스트의 가치를 높이는 요소다.
내 경우도 비슷하다. 프리랜서로 지내면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어떤 콘텐츠를 접하든 ‘이걸 누군가에게 어떻게 전달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요즘 핫한 OTT 오리지널 시리즈를 볼 때도, 단순히 재미 여부를 넘어서 ‘이 작품이 갖는 사회적 메시지’나 ‘연출의 독창성’ 같은 부분을 메모하게 된다. 이런 작은 습관이 모여서 내 컬쳐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만든 느낌이다. 실제로 나는 최근 독일 드라마 ‘다크(Dark)’를 보면서 타임루프 구조와 인과율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정리해 블로그에 올렸는데,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며 토론을 이어갔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좋아하는 것을 깊이 파고드는 것’이 곧 큐레이션의 출발점임을 확신하게 됐다.
하지만 여기서 조심해야 할 점도 있다. 컬쳐리스트로 활동하다 보면 ‘모든 걸 다 알아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기 쉽다. 실제로 나도 초반에는 ‘이 트렌드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온갖 콘텐츠를 무리하게 소비하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내 취향을 명확히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특정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사람이 더 신뢰를 얻더라. 예를 들어, 나는 독립출판물에 집중하기로 한 이후로 팔로워 수는 줄었지만, 참여율과 신뢰도는 크게 올랐다. 이는 ‘깊이’가 ‘폭’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큐레이션의 질을 높이기 위해 나만의 평가 기준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이 콘텐츠가 나에게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불러일으켰는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또 하나 주의할 점은, 큐레이션이 단순한 ‘링크 모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블로그나 SNS에 다른 사람의 콘텐츠를 무분별하게 가져오기만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진짜 컬쳐리스트는 자기의 해석과 경험을 덧붙여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전시회를 소개할 때도 공식 설명을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니라, ‘이 작품을 보면서 내가 느낀 점’, ‘이런 점이 나에게는 새로웠다’는 식의 개인적인 시각이 들어가야 진정성이 느껴진다. 나는 최근 ‘MMCA 현대차 시리즈 2024’ 전시를 다녀온 후, 전시장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색채가 주는 심리적 효과’에 대한 나만의 분석을 곁들여 포스팅했다. 그 결과, 전시의 공식 리뷰보다 내 글이 더 많은 공유와 댓글을 받았다. 이는 큐레이션에 있어 ‘개인적인 경험’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요즘 나는 컬쳐리스트로서의 방향성을 다시 정립 중이다. 한때는 인기 있는 주제를 따라가려고 했지만, 지금은 ‘내가 진짜로 사랑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나는 독립출판물과 소규모 전시에 관심이 많다. 비록 대중적인 인기는 적을 수 있지만, 그 분야의 진정한 마니아들은 내 큐레이션을 더 신뢰한다. 실제로 내 블로그에 독립출판물 리뷰를 올리면 기존 팔로워보다 새로운 방문자가 더 많이 찾아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틈새시장’의 힘을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또한, 나는 최근 서울의 한 소규모 책방에서 열린 ‘지역 출판물 페어’를 소개했는데, 그 글이 책방 주인에게 전해져서 추가 협업 제안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컬쳐리스트의 활동은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기회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 하나의 ‘문화 생태계’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개인의 취향이 모여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그 트렌드가 다시 산업에 영향을 주는 선순환 구조다. 예전에는 대기업이나 방송사가 트렌드를 주도했다면, 지금은 개인 블로거나 인스타그래머가 먼저 발견하고 알리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 한겨레의 분석에서도 ‘개인 큐레이터의 시대’를 조명하며, 이러한 현상이 문화의 다양성을 높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예를 들어, 최근 K-팝의 글로벌 확산에는 팬들의 자발적인 큐레이션이 큰 역할을 했다. 팬들이 직접 아티스트의 음악, 퍼포먼스, 패션 등을 분석하고 공유하면서, 기존 미디어의 틀을 넘어선 새로운 문화적 흐름이 만들어졌다. 이는 컬쳐리스트가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생산자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컬쳐리스트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꾸준함’인 것 같다. 한 번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보다는, 매일 조금씩 자신의 취향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습관이 진정한 가치를 만든다. 나도 블로그를 시작한 지 3년이 넘었는데, 처음에는 방문자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나만의 독자층이 생겼고, 그들과의 소통이 큰 즐거움이 됐다. 특히 매주 금요일마다 ‘이번 주 내가 발견한 작은 문화’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루틴을 만든 이후로, 독자들이 그날을 기다린다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 꾸준함은 단순히 양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기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3년 전의 글과 지금의 글을 비교해보면, 내 취향이 어떻게 세련되고 깊어졌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결국 컬쳐리스트는 ‘전문가’가 아니라 ‘취향을 가진 보통 사람’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정리하고 나누는 일에서 시작하면 된다. 당신도 지금 좋아하는 무언가를 한번 골라서 기록해보길 권한다. 아마 그 작은 시작이 예상치 못한 큰 기쁨을 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기쁨이 모여서 더 풍요로운 문화 생태계를 만들어갈 것이다.